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이 취재룸J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기 피해를 당한 후 피해자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조사를 받고 다녔고, 평생 해보지 않은 시위도 나섰다. 가족 간에도 갈등이 잦아졌고 무엇보다 세상을 믿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욕심 때문에 당했다’는 세간의 시선도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불황이 지속되는 한 피해자들의 불안심리를 노리는 금융사기는 끊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 많던 유명인과 공직자들은 어디로 갔나
“은행이자보다 조금 더 준다.” IDS홀딩스 모집책들은 투자금에 대해 ‘정기예금’이라고 강조했다. 수익률도 허황되지 않았다. 당시 은행이자보다 조금 더 준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몰려있는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연예인들과 정치인들, 검경 관계자들의 축사와 화환이 신뢰감을 불어 넣어줬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역시 화려했다. TV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홍보 기사를 찾기 어렵지 않았다. 본사에서는 유명인들이 강연이 열렸고 연예인 초청 대규모 행사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현재 남아있는 이들은 피해자들뿐이다.
DIS홀딩스 피해자 A씨는 “본사도 가보니까 정말 그럴싸하고, 그 비싼 빌딩 전을 사무실로 쓰고 있더라”며 “더구나 금융회사라고 했는데, 금융회사는 회사를 마음대로 차릴 수 없는 거고 법적으로 설립이 까다롭지 않냐. 설마 사기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남 한복판에 본사를 뒀던 밸류 역시 빌딩 3개 층을 사무실로 두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밸류의 모집책들은 대부분 보험모집인단 경력자들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룸J가 만난 피해자 역시 보험설계사를 통해 밸류에 투자를 하게 됐다.
밸류 피해자 B씨는 “보험설계사 소개로 밸류를 알게 됐다. 당시 밸류가 광고도 잘했었다”면서 “전성기 때는 방송에도 나오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홍보대사처럼 나서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B씨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들의 압력이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든다”면서 “과거 밸류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청와대나 국회에서 일하고 있다던가 이런 건 팩트 아니냐. 그래서 수사가 잘 안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답답해했다. 실제로 과거 벨류 경영기획실에서 대리로 일하며 임원 회의록도 작성했던 C씨가 2017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경제상황이 어려울수록 대규모 사기범죄가 극성을 부린다고 경고한다. 특히 한국의 상황이 그렇다는 것.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처장은 “최근 5년간 대규모 금융다단계 사기가 급증했다”면서 “장기적인 경제불황 영향으로 보인다. 절망사회에서 사이비종교 아니면 금융사기가 판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것도 사기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사례도 정말 많다”면서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인생 도처에 다 사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 정치권에서는 금융사기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못하는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갈길 먼 투자금 환수
피해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당연히 투자금 환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회사는 빈털터리고, 일부 기소된 모집책들 역시 막상 재산내역을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피해자들은 검찰이 자금추적에 대해선 거의 손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밸류 피해자 B씨는 “2년 동안 싸워왔는데 정작 중요한 투자금 회수가 안 되고 있다. 2015년에 처음 기소가 됐고 지금 2021년인데 6년이면 이미 어디론가 다 빼돌렸을 것”이라며 “실제로 모집책들도 재산을 다 배우자 명의로 돌려놓고, 서류상 이혼을 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형사든 민사든 재판에서 피해입증은 피해자가 해야 하는데 입증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면서 “당시의 카톡 내용이나 이체내역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싸워볼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첫 투자가 6~7년 전이다보니 입증할만한 자료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도 금융다단계 사기사건 수사에서 피해자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고 비판한다. 홍성준 사무처장은 “피해금액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애초에 자금추적을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해외로 빼돌린 돈은 거의 손 놓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이어 “비호세력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돈들,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투자들도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홍콩 금융당국이 한국 검찰에 IDS홀딩스가 빼돌린 돈이 얼마만큼 있다고 알려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처리가 됐는지 모르겠다. 피해자들에게 설명도 안 해주고 또 국내 수사당국은 피해자들을 너무 무시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뒤바뀐 삶
현재 피해자들의 삶은 어떨까. 모아둔 자금을 한꺼번에 날리자 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족과 단절된 피해자도, 화병으로 지병을 앓거나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들도 있다.
홍성준 사무국장은 “노년층의 퇴직금을 노리는 사기가 가장 흔하다”면서 “평생 어렵게 번 돈이고 마지막 노후자금인데 이런 분들이 사기를 당하면 정말 어려운 삶을 살게 된다.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밸류 피해자 B씨도 “기회비용이 아까울 뿐이다. 당시 모아둔 현금을 다 투자했다”며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었던 여유자금을 날려버리니까 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인터뷰 내내 한숨이 끊이질 않았던 IDS홀딩스 피해자 A씨도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살아야 하나 죽어야하나. 매일매일 고통이었고 병원도 자주 다니게 됐다”며 “지금은 4~5년 지나서 나아졌지만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안 피던 담배까지 피우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애들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모은 돈 한방에 날렸다’는 얘기를 한다”면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애들 얼굴을 못 보겠다. 자식들하고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눈을 피하게 되더라”라며 힘겹게 털어놨다.
시민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모델로 하는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해당 기구는 독립적인 수사권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홍성준 사무처장은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모델로는 인권운동 경력자들을 구성으로 하는 현 국가인권위원회가 돼야 할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금융소비자운동을 해온 학자나 시민운동가, 법조인, 정당인들을 중심으로 모든 금융증권회사는 물론 이들을 감독하는 금융기관들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기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 일이 있고 난 후 세상을 믿을 수가 없더라. 지금도 백두산 카페(사기 피해자 구제 네이버 카페) 가보면 사기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면서 “언젠가 검사가 내게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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