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 하나 잡아놓고 끝입니다. 공범세력들도 안 잡습니다. 비호세력도 수사도 안하고, 기소도 안합니다. 자금추적도 안합니다. 그리고 범죄수익 해외로 은닉됐을 경우 거의 손 놓고 있습니다. 주범은 재산 빼돌려 이미 어딘가에 숨겨놓거나 한 10년 정도 징역 살고 나와서 자신의 몫을 찾아가겠죠.”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취재룸J가 만난 피해자들은 검찰의 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피해자 단체들은 사건 담당 검사에 대한 고발 및 부실수사에 따른 징계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측은 담당 검사들에 대한 징계 요청에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침묵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기약 없는 검찰 수사에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황제접견실이 된 검사실
검찰은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가 672억원 사기 사건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가 확정된 2년 동안 추가 범행을 막지 못했다. 그 사이 피해 금액은 1조 원 대로 불었고, 그제야 검찰은 김성훈을 추가 기소해 뒤늦게 징역 15년의 실형을 끌어냈다. 검찰에 대한 피해자들의 실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4일 IDS홀딩스 피해자 단체는 대검찰청 앞에서 김영일 검사에 대한 파면 요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년 11월 26일 법무부에 김영일 검사에 대한 감찰을 요청한 지 3개월 만이었다. 피해자단체에 따르면 2017년 2월 두 번째 기소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김성훈은 서울구치소에서 H씨를 만났다. 김성훈은 H씨와 공모해 피해자들에게 8,000억원을 변제한다고 속여 김성훈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피해자들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2017년 9월 2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으면서 김성훈의 계획은 무산됐다. 문제는 김성훈이 H씨에게 범죄수익금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중간매개체 역할을 한 장소가 당시 서울중앙지검 김영일 검사의 집무실이란 점이다. H씨는 사건 제보를 이유로 김영일 검사와 왕래가 있던 사이였고, 이를 알게 된 김성훈이 H씨를 통해 김영일 검사에게 사건 제보를 대가로 편의를 누리려 했던 것.
피해자단체는 기자회견에서 “김영일 검사는 실적에 눈이 어두워서 김성훈과 외부인을 격리시키지 않고, 결국은 검사실이 범죄수익은닉 범행의 장소로 이용되게 만들었다”면서 “대검찰청은 김영일 검사의 행위에 대해 반성은 없이 그 책임을 교도관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현재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는 김영일 검사를 고발한 상태다.
정진모 IDS홀딩스연합회 위원장은 취재룸J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일 검사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 했는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며 “만약 기소가 될 경우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잘못된 기소로 3년 동안 불구속 재판
수사는 했지만 기소는 하지 않는 검찰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사건도 애초에 기소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2015년 7,000억 원 사기 사건 주범 이철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사기죄가 아닌 단순 사기로 기소한 당시 박찬호 부장검사. 단순 사기 사건의 경우 판사 한 명이 재판하는 단독재판부에 배정된다. 하지만 대규모 금융다단계 사건을 판사 한 명이 담당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이민석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민석 변호사는 “7,000억 원 규모의 사기를 저질렀다면 상습이다. 당시 검사는 이철과 공범들을 상습사기로 기소를 했어야 했다”면서 “사건 기록만 해도 상당한데 그런 사건을 판사 한명보고 재판하라고 하면 재판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1심 재판 중 6개월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이 됐고, 석방된 상태에서 금융범죄를 또 저질렀다”면서 “상습사기로 기소했다면 판사 세 명이 재판하는 합의재판부에서 진행했을 것이고, 6개월 내에 1심 선고가 나왔을 것이다. 그랬으면 재판 중에도 사기를 또 저지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단체는 지난해 9월 29일 박찬호 검사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3개월 뒤 돌아온 답변은 진정 종결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미 <사기공화국 대한민국> 2편에서 보도됐듯 검찰이 모집책들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문제점은 살펴봤다. 그러나 검찰이 적극적이지 않은 수사 분야는 또 있다. 바로 범죄수익의 출처다.
밸류 사건 피해자들은 당시 검찰이 이철 등이 획득한 범죄수익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거나 기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의 투자금 20%는 모집책들에게 수당으로 분배됐고 나머지 80%는 60여개의 이른바 ‘피투자기업’이라는 곳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밸류 사건 판결문에도 427억 원이 사라졌다고 적시돼 있다.
밸류 사건은 최근까지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는데 고발 내용의 증거는 검찰 수사보고서다.
이민석 변호사는 “지금까지 총 5차례 고발장을 접수했는데 고발 근거 자료가 검찰의 수사보고서”라며 “2015년 기소 당시에 검찰이 이철과 공범들을 기소하고 밸류를 압수수색했다. 그때 만든 수사보고서에 계좌추적 내역이 다 나와 있고, 심지어 중간에 횡령도 했다는 게 나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 정도까지 자료를 마련해놓고도 그 부분에 대해 전혀 기소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사건을 덮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중에 피해자가 검찰의 수사보고서를 발견한 후 그 수사보고서를 증거로 검찰과 경찰에 고발했다”고 말했다.
2015년 검찰이 작성한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수사보고서 일부.
5차례 고발 건 중에는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자회사인 밸류인베스트파트너가 회사 대표이자 이철의 배우자인 손모 씨에게 급여를 지급했다는 내용도 있다. 피해자들은 이를 횡령으로 보고 고발한 상태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검언유착으로 논란이 됐던 채널A 기자 이모 씨의 재판에서 이철의 배우자 손모 씨가 증언을 하면서 알려졌다. 피해자단체는 이 역시 검찰이 2015년 압수수색을 통해 알았을 것이라 보고 있다.
피해자들이 확보한 203페이지 분량의 검찰 수사보고서에는 벨류와 총 61개 피투자처와의 거래내역이 나와 있다. 이들 투자처에는 신라젠도 포함돼 있다. 이철은 신라젠의 초기 대주주다. 피해자들은 이들 피투자처를 수사해 부정한 거래 내역이 있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민석 변호사는 “이달 초에 서울남부지검에서 이철과 공범 8명을 방판법위반으로 기소를 했는데 이미 5년 전에 기소할 수 있던 것들”이라며 “5년 동안 내버려두다가 최근에 8명 기소한거다. 그렇게 쉬운 것도 하지 않은 게 검찰”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수사보고서를 보면 피해자들이 앞으로 고발할 게 50~60건 더 남아있다”며 “피해자들이 50건, 60건 고발하기 전에 검찰이 직접 과거 남겨놨던 자신들의 수사기록을 참고해서 직권으로 다 기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지지부진한 검찰 수사에 더욱 고통 받고 있다.
밸류 피해자는 “초기에 빠르게 증거를 확보하고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밸류 같은 경우는 너무 오래 동안 사건을 내버려뒀다”면서 “이미 검찰 자료를 보면 다 확보를 해 놨다. 계좌추적, 자금이 흘러간 흔적, 출금, 그런데 수사를 안 한 거예요. 내역을 뽑아놓고서”라고 한탄했다.
IDS홀딩스 피해자 역시 “참 많은 피해자들이 죽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보도 한 번 되지 않은 거 같다”면서 “이 사건 자체가 이렇게 크게 번져야 될 사건이 아닌데, 검찰에서 잘못한 거 아니냐. 처음에 670억 원 짜리 사건이 터졌을 때 빨리 수사를 해서 구속을 시켰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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