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공화국 대한민국] ② “그들의 직업은 ‘사기꾼’이었다”

조나리 기자 승인 2021.02.05 13:39 | 최종 수정 2021.02.05 19:42 의견 0

이민석 변호사가 취재룸J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들은 주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대다수 모집책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IDS홀딩스와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사건은 대표가 재판을 받는 동안 피해 금액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672억원 사기로 집행유예
7,000억원 사기로 석방

600만원도 아니고 6,000만원도 아니다. 무려 672억 원의 사기 행각으로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가 받은 형벌은 ‘집행유예’였다. 2014년 8월 법원은 672억 원의 사기 범행을 저지른 IDS홀딩스 김성훈의 구속영장신청을 기각했다. 결국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된 김성훈은 다음해인 2015년 6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이 선고됐다.

2016년 1월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오히려 줄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같은 해 8월 대법원은 김성훈에 대한 형을 확정됐다. 비록 집행유예긴 하지만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고 나서도 IDS홀딩스의 사기 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김성훈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자 무죄라도 받은 듯 피해자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했다.

당시 법원은 재판 중 피해 금액 대부분을 피해자 측에 반환했다는 김성훈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반환된 피해금액은 또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끌어 모은 투자금이었다. 돌려막기로 사기 행각을 벌여 재판을 받으면서도 또 다시 돌려막기로 피해 규모를 키운 셈이다. 결국 김성훈이 재판을 받는 도중 IDS홀딩스 사건 피해 금액은 672억 원에서 무려 1조1,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제2의 조희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에 대해 이민석 변호사는 “다단계사기 주범이 재판 중 피해 금액을 변제했다고 하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마련했는지 추궁을 하고 조사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면서 “결국 법원과 검찰의 안일한 대처가 피해 규모를 1조원으로 키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태가 커지가 검찰은 김성훈을 다시 기소했다. 그나마 이번엔 법원에서 구속 결정이 떨어졌다. 김성훈이 첫 재판에서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은 지 한 달 만이었다. 김성훈은 2017년 2월 1심에서 12년을 선고 받았고, 9월에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15년으로 형량이 소폭 늘었다. 같은 해 12월 대법원은 김성훈의 15년형을 확정했다.

취재룸J가 만난 IDS홀딩스 피해자 역시 김성훈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난 뒤 투자를 했다가 피해를 입었다.

IDS홀딩스 피해자 A씨는 “재판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면서 “집행유예를 받거나 불구속 결정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마치 죄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끔 투자자들을 구워삶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IDS홀딩스 고문 변호사가 투자자들을 모아 놓고 ‘이런 결론(집행유예)은 무죄나 마찬가지다’ 이런 말을 하더라”며 “일반 사람들은 사건번호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모집책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피해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밸류 역시 대표 이철이 7,000억원 사기로 재판을 받는 동안 피해 금액이 2,000억원 더 늘었다. 여기에는 이철이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것이 주된 영향을 미쳤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 3편 ‘검사의 기소’ 문제에서 다룬다.

(이철은 2,000억 원 추가 사기와 관련, 김성훈과 마찬가지로 1심 선고 나오고 5개월 뒤 또 다시 기소돼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정황은 이렇다. 2015년 10월,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이철 대표를 비롯한 일당 8명이 7,000억원 사기로 구속되자 모집책들은 검찰을 비난했다. 불안해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밸류를 믿어보자”고 다독이며 피해자들의 판단을 흐려 놓았다.

밸류 피해자 B씨는 취재룸J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에 처음 압수수색이 있었을 때부터 2018년 12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 동안 모집책들은 ‘검찰이 적폐다’, ‘검찰이 전도유망한 투자 회사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면서 “이후 1심에서 이철이 유죄가 나오니까 그래도 계속 밸류를 편드는 사람들도 있고, 갑자기 태세를 바꿔서 ‘나도 피해자다’라고 주장하는 모집책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점장이었던 내 모집책도 나중에 자기도 피해자라고 말하더라”며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대해 B씨는 “모집책들은 실적이 나오면 나올수록, 투자금을 많이 받을수록 자기가 받는 인센티브가 높아지고 직급도 올라간다”면서 “돈을 훨씬 많이 벌었는데 자기도 몇 천만 원 투자했다고 피해자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단계사기는 조폭 시스템... 전원 엄벌해야”

시민단체는 금융 다단계 사기 사건은 모집책 전원을 기소해야 범행을 뿌리 뽑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은 “이들의 생리가 조폭과 비슷하다. 철저한 상명하복이 이뤄진다”면서 “범죄단체로 등치시켜 보면 두목이 있고, 중간보스가 있다. 중간보스가 자기 영역을 관리하는데 두목만 처벌하면 조직이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냐”고 꼬집었다.

홍 사무국장은 “최소한 중간 보스들까지 다 처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들이 피해자들 들고 나가서 또 다른 사기사건 벌어진다”면서 “그래서 다단계 사기집단 같은 경우 범죄단체조직죄로 처벌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과거에 작은 규모지만 경찰이 그렇게 처리했던 일이 있긴 하다. 그러나 검찰이 그런 의지를 보인적은 없다”고 말했다.

모집책은 사건별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있다. 시민단체가 다단계금융사기 사건에 대해선 별도의 수사팀을 꾸려 통합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민석 변호사는 “밸류 같은 경우는 본부장 등 상위모집책만 해도 10명이 넘는 거 같고, 지점장급 중간모집책은 40~50명, 그 밑에 있는 수석팀장 직급은 200~300명 단위는 되는 거 같다”며 “검찰이나 경찰특별수사본부를 주도로 통합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게 갖춰지지 않다보니 피해자들이 고소·고발하지 않으면 아예 수사조치 진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사건 모집책끼리도 법원마다 유무죄가 갈리는 사건도 있다. MBI 사건 재판이 대표적인 예이다. MBI 사건은 2016년 당시 수원지검 이종근 부장검사(현대 대검 형사부장)가 전국 통합 수사를 실시하면서 일부 상위 모집책들이 구속된 바 있다. 그러나 8만 명의 피해자 규모를 고려하면 성과는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당시 수원지법은 구속된 상위 모집책들에 대해 사기와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사기는 무죄, 방문판매법만 유죄가 인정, 1심 보다 1년 줄어든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이 때문에 당시 MBI 모집책들은 “MBI 투자는 사기가 아니다”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피해 규모는 점점 커졌고 최근 다시 전국 곳곳에서 일부 MBI의 모집책들이 속속 기소되고 있다. 2019년 강릉에서는 MBI 모집책 김모 씨가 구속 기소되고 안모 씨가 불구속 기소됐다. 강릉지원은 1심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사기죄와 방문판매법 위반을 인정했지만, 올해 1월 항소심에서는 사기만 유죄가 인정됐다. 그나마 사기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 다행이라고 시민단체는 입을 모은다.

하지만 같은 사건인데도 지난해 말 대구지검과 포항지청에서는 모집책들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MBI 사건 피해자들은 그간 조직적으로 대응한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대응했다”면서 “전체 조직의 체계가 그려지고 그 상태에서 개별적인 것을 봐야하는데 피해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까 모집책들도 어디서는 유죄 어디서는 무죄가 나오는 상황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MBI 사건 한국 총책은 현재 도피중이고 국내에는 상위모집책, 중간모집책 정도만 남아 있다”면서 “그러면 적어도 한국에 있는 모집책은 제대로 처벌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처벌을 안 하고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처벌을 받은 모집책들 역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집행유예를 받거나 실형도 대부분 5년 미만에 그쳐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형량이라는 지적이다. 피해자들은 모집책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투자자를 모으고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밸류 사건 피해자 B씨는 “임원진들은 구속돼서 형을 살고 있는데 모집책들은 처벌 받은 사람이 거의 없죠”라며 “임원진들 또한 피해자 수를 감안하면 4~5년 이라는 형량은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 같다”며 답답해했다.

B씨는 “모집책 대부분은 지금 다른 일들 하고 있더라. 보험설계사 하던 분은 지금 보험설계사 하고 있고, 제 모집책 같은 경우는 다른데서 또 투자 모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IDS홀딩스 피해자 A씨도 “수도 없이 남부지방검찰청에 와서 일 끝나고 1인 시위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면서 “집행유예로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거 같았다. 앞으로 재판도 안 봐도 뻔하다. 실형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지금 모집책들 보니까 다른데 가서 또 사기를 벌이고 있다”면서 “형량이 너무 낮으니까 사기 잔뜩 치고 ‘잠깐 징역 살다 나오면 되지’ 그런 식이다. 형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성준 사무국장은 “엄벌하지 않는 한 이들은 재범을 노리고 피해자들은 늘 불안해 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은 사법 정의도 아니며 결국은 ‘사법부가 사기범들과 한패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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