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 사기 사건은 이미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월간 고소·고발 건이 5만 건을 육박했다. 이 같은 추세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형사공판 34만여 건 중 가장 많은 사건 죄명은 6만2,854건(18.3%)을 기록한 사기·공갈죄였다. 특히 최근 5년간 유사수신사건 및 신형 투자사기 사건이 급증했다는 게 시민단체의 설명이다. 노령층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금융감독원이 수사의뢰한 유사수신사건 전체 피해액 가운데 60대 이상 피해액 비중은 2018년 42.1%에서 2019년 51.9%까지 늘었다. 실제로 희대의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것이 무색하게 ‘○○판 조희팔 사건’, ‘제2의 조희팔 사건’ 등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취재룸J는 조희팔 사건을 시작으로 대표적인 3개 사건(IDS홀딩스·밸류인베스트코리아·MBI)을 통해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한 배경을 들여다본다.
사기공화국의 서막... 조희팔과 비호세력
2016년 6월 28일. 검찰이 희대의 사기사건 ‘조희팔 사건’의 재수사를 마무리했다. 조희팔은 2004년 10월부터 2008년 10월 사이 의료기기 대여업을 내세워 7만여 명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5조715억원을 끌어 모았다. 조희팔은 경찰이 수사를 본격화하자 2008년 12월 중국으로 달아났다. 피해자들은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희팔의 사기 행각과 도주 과정에 경찰과 검찰 등 비호세력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희팔 일당의 비호세력은 다음과 같다.
당시 조희팔 일당에게 뇌물과 골프접대를 받은 대구 성서경찰서 정모 경사, 사건 무마 청탁으로 2억7000만원을 받은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 조희팔의 범죄 자금을 관리해온 전직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 임모 씨 등 3명, 마찬가지로 수사 무마를 명목으로 10억원 대 돈을 받은 대구지검서부지청 소속 서기관 오모 씨, 1억원 받은 김모 전 경위와 9억원을 받은 대구지방경찰청 권모 전 총경, 조직 뒤를 봐준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곽모 경위까지.
조희팔 사건은 5조원이라는 피해액은 물론 광범위한 비호세력까지 모든 것이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주범 조희팔은 사망해(2012년 5월 21일 경찰은 조희팔이 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처벌할 수 없었고, 조직 핵심 간부 등 조희팔의 최측근 일부만 처벌받는데 그쳤다.
그 때문일까. 조희팔 사망 발표 후부터 비슷한 대형 사기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이들 사건은 대체적으로 조희팔 사망 시점을 전후로 범행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벨류인베스트코리아 사건과 IDS홀딩스 사건은 2011년부터, MBI 사건은 2012년 말부터 국내 투자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두 번 울린 IDS홀딩스 비호세력
이중 IDS홀딩스 사건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외환거래를 통한 고수익을 미끼로 1만2000여명의 피해자들을 속여 1조960억원의 투자금을 거둬들였다. IDS홀딩스는 조희팔 사건처럼 비호세력 의혹이 짙은 사건으로, 관련 보도에서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2014년 3월 IDS홀딩스 전신인 IDS아카데미 창립 7주년 비전선포식에서 경대수 전 의원과 변웅전 전 의원이 축하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경대수·변웅전 전 의원은 IDS홀딩스 유지선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해 9월 IDS홀딩스 사무실 이전식에도 천정배 전 장관과 김한길 전 의원, 김종필 전 국무총리, 경찰 총경, 검사장, 부장검사 등의 화환이 전시됐다.
IDS홀딩스의 화려한 정관계 인맥은 피해자들이 쉽게 투자를 결정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처벌까지 받은 비호세력들도 있다.
경찰관 윤모 경위는 IDS홀딩스 대표 김성훈에게 수사기밀을 제공한 대가로 6000만원의 금품을 받아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IDS홀딩스로부터 3000만원을 받고 윤모 경위 등 경찰관 2명을 경위로 특별 승진 시키고, 이들에게 IDS홀딩스 사건을 담당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구은수 전 청장에게 뇌물을 전달한 인물은 이우현 의원의 전 보좌관 김모 씨 였다. 그러나 구 전 청장은 직권남용 혐의만 유죄 판결을 받고 뇌물 혐의는 보좌관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우현 전 의원 또한 별도의 뇌물 사건으로 2019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 전 의원과 IDS홀딩스와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약탈경제반대행동 홍성준 사무국장은 “경험치로 보면 1,000억원 이상의 사기 사건이 있을 경우 반드시 국가의 공권력 내지는 권력자 등 비호세력이 있다고 보여진다”며 “판검사들이 금융사기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도 부족하고, 그들 스스로가 금융사기의 비호세력인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단계 금융사기의 원조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이하 밸류) 사건은 최근 신라젠 사건이 터지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마찬가지로 피해액만 9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기 사건이다. 이철 대표는 비상장 주식에 투자해 고수익을 내겠다며 3만여 명의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챙겼다.
전국적으로 28개 지점을 둘 정도로 성장한 밸류는 수수료 명목으로 투자금의 20%를 챙긴 후 남은 금액으로 투자에 나서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국 IDS홀딩스와 마찬가지로 후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을 선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체를 운영했다.
밸류는 여러 피투자기업들이 얽혀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라젠이었다. 피해자들은 피투자기업들을 수사해 피해금액의 출처를 밝혀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밸류 사건은 IDS홀딩스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 특히 재판 중에도 두 대표가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은 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법원과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 2편과 3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국제사기 MBI... 국내 피해자만 8만 여명 추정
MBI 사건도 최근 수사가 시작되면서 일부 지역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다. 피해 규모로는 IDS홀딩스와 벨류 사건보다 훨씬 큰 반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건 중 하나다. MBI는 IDS홀딩스와 밸류와 달리 국제조직이다. 본부는 말레이시아에 두고 있고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피해자들을 양산해왔다.
MBI의 국내 피해자는 8만여 명. 피해액은 무려 5조원 이다. 피해자 연령층은 50~60대 이상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MBI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 ‘엠페이스’에 투자하면 광고권과 가상화폐를 주겠다며 피해자들을 속여왔다. 이들은 엠페이스가 “중화권 7억만 명이 이용하는 SNS”라며 “가상화폐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고, 환전도 가능하다”고 했다. 또 투자자를 끌어오면 투자금의 일부를 수당으로 챙겨주겠다며 피해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약속했던 엠페이스의 상장이 무산됐고 가상화폐도 환전이 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들은 2019년 6월 말레이시아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말레이시아 정부에 사법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MBI 사건 한국 총책으로 추정되는 안모 씨는 현재 종적을 감췄다. 이에 피해자들은 수사 당국에 안 씨에 대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수배(red notice) 요청을 촉구하고 있다.
MBI 사건은 밸류 사건과 함께 국내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 중 모집책 처벌자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사건이다. 현재 5명 남짓 되는 극소수의 모집책들이 각 관할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재판부마다 유무죄가 갈리고 있어 피해자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취재룸J는 현재 진행 중인 MBI 재판 및 수사와 관련 <사기공화국 대한민국> 2편과 3편에서 각각 다룬다.
금융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이민석 변호사는 “모집책들에 대해 현재 기소중지가 됐는데 수사가 될 리가 없다”면서 “적어도 IDS홀딩스나 밸류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통합수사가 되고 있지만 MBI는 전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조직이 한국과 중국, 대만 등 각국에서 사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사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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