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①과거사 규명으로 가는 길

조나리 기자 승인 2021.03.12 11:55 의견 0

지난 2월 23일 오전 윤호상(왼쪽)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의장과 정국래 운영위원장이 한병도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를 만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가고 있다. 사진=취재룸J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0년 만에 출범했다. 출범과정이 쉽지 않았다. 여야간 합의는 이런 저런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급기야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에서 고공농성을 벌였고,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이 20대 국회 내 처리를 약속하면서 상황은 급반전, 일부 내용이 수정돼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과거사정리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우여곡절을 겪었다. 여당과 제1야당이 각각 4명씩 위원을 선출하는데, 국민의힘 선출 위원의 과거 언행이 논란이 된 것. 국민의힘이 추천한 정진경 위원은 과거 교수 재직 시절 성추행 전력이 드러나, 지난 1월 9일 선출 하루 만에 자진사퇴했고, 정 위원의 공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나머지 위원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주요 과거사 사건에 대해 극우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차기환 변호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 남파설을 주장해왔다. 또한 차 위원은 박근혜정부 시절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 비상임위원을 역임하면서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선출 위원인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역시 제주 4·3사건에 대해 ‘공산주의 세력의 폭동’ 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을 요구해온 피해 단체들은 이들에 대한 선출 철회 및 대통령의 임명 거부를 촉구해왔지만, 성추행 전력으로 자진사퇴한 정진경 위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식적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과거사 관련 단체 유족들은 2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제대로 조사도 못한 채 시간만 끌다가 활동을 종료할까 하루하루 불안함 속에서 보내고 있다.

“야당 추천 위원, 과거사 규명 활동 끝까지 지켜볼 것”

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선출 논란과 관련 “국민의 화합을 이루고자하는 노력에 찬물은 끼얹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송운학 상임대표는 “국민의힘은 도대체 과거사에 대해 생각을 해본건지, 오히려 과거사 진상규명을 방해하려고 이런 사람을 추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면서 “논란이 된 위원들은 전혀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주장을 펼쳐온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선감학원 생존자이자 삼청교육대 강제연행 피해자인 한일영 씨 역시 야당의 위원 선출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는 “절망적이다. 힘들게 과거사 2기가 출범했는데 또 흐지부지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면서 “지금도 많이 늦었다. 이번에 활동이 끝나면 많은 분들이 돌아가실 것이다. 지금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실로 과거사 정리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편향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내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사람들도 필요 없고, 가운데서 공정하게 과거사 정리를 해줄 수 있는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특히 2기 과거사위원회 신청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전쟁민간인학살 피해 유족들은 더욱 분노감을 나타냈다. 과거사위원회 출범을 촉구했던 10년 동안 이미 많은 피해자들이 사망했고, 지금도 많은 유족들이 70~80대의 고령이기 때문이다.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의장은 “한 명은 성추행 전력으로 자진사퇴를 했지만 나머지 위원은 사퇴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활동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분들이 사퇴하지 않고 활동을 한다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근식 위원장이 소신을 갖고 활동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같은 위원 구성에서 과연 위원장 한명이 소신과 신념을 갖고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유족들이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과거사 규명을 방해한다면 켤고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과거사정리위원회 법안이 통과되면서 일부 법안 내용이 수정된 것 역시 야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2기 과거사위원회는 위원 수와 조사기간도 1기 때보다 줄었고, 무엇보다 배·보상 조항이 빠졌다.

송운학 상임대표는 “국민의힘 쪽에서 특히 과거사위원회를 꺼려했다. ‘이미 다 끝난 거 아니냐’, ‘배상과 보상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식의 논리로 소극적으로 나왔다”며 “민주당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했다. 자칫 정치공학적으로 여론상의 지지를 못 받는 건 아닌가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고 과거사위원회의 뒤늦은 출범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지난 2월 23일 윤호상 상임의장과 정국래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전국유족회 운영위원장은 한병도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를 만나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족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윤호상 의장은 “현재 한병도 의원이 과거사법 수정안을 내놨다”면서 “국가가 민간인을 학살하고 70년을 방기해 놓고 배·보상 조항을 빼버린 것은 국가의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수정안이 통과될지는 국회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상임의장은 “국가는 피해자들이 사라져도 진상규명을 멈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취재룸J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유족들 “이번이 마지막 명예회복 기회”

지난 2월 25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 전국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윤호상 의장은 “이번이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면서도 “국가는 피해자들이 사라져도 진상규명을 멈춰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접수된 피해 신청건은 1,600여건이다. 이 중 90% 이상이 한국전쟁민간인학살 관련 건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 피해자는 ▲대구 10·1항쟁 ▲제주 4·3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 ▲보도연맹 ▲부역혐의 ▲미군폭격 ▲적대세력의 의한 희생 등 다양한 피해자들로 구성돼있다.

이들 중 많은 경우가 2005년 1기 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당시 관련 내용조차 모르고 있거나, 고령과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유족회 측의 설명이다.

윤호상 상임의장은 “앞으로도 계속 신청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오늘도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사무실을 오셨다. 아마 오늘 새로 접수할 인원만 60명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2기 과거사위원회는 1기 활동과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기 과거사위원회가 민간인학살 자체 여부에 주안점을 뒀다면, 2기는 개개인의 피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호상 상임의장은 “1기 과거사위원회는 황무지에서 나무를 심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로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주로 ‘이런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내용”이라며 “2기 때는 개개인의 죽음이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 그 시신을 어떻게 했는가? 또 국가는 이분들의 죽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인학살 피해자 및 유족들은 그냥 못 산 게 아니라 엄청난 탄압을 받아왔다”면서 “연좌제를 실시해서 좋은 직업도, 사회경험도 못하게 만들었고 감시와 탄압을 계속 해왔다. 연좌제는 폐지됐지만 지금도 감시의 눈이 있습니다. 유족회도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다만 2기 과거사위원회의 신청서 양식이 1기 때보다 다소 복잡해지면서 유족들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상임의장은 “1기 때는 신청자의 인적사항만 적게 돼있었는데 2기 때는 가해자 기관, 가해자 이름 등을 쓰라고 한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 피해자 대부분은 당시 유복자로 2살, 3살, 5살 정도인데 가해자를 어떻게 알겠냐”면서 “가해기관이 경찰이다. 군인이다. 이런 것만 알지 누구이며 어느 부대인지는 모른다. 이런 것은 국가가 밝혀줘야지 신청자에게 쓰라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70년이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국가기관과 독립된 기구가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국가의 기밀을 파헤쳐야 한다”며 “아울러 이번에야 말로 배·보상 특별법과 재발방지법을 만들어 다시는 이 땅에 어떠한 전쟁위험이나 위기가 오더라도 민간인 학살이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국가의 의무이고 신청인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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