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피해자 김두황 씨의 추모식 모습. 사진=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누군가는 거론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유신헌법이 과연 어떤 식으로 기획됐으며, 어떻게 실행됐는지. 민청학련 사건도 그래요. ‘사법살인’이 아니에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사형 집행을 준비했어요. 단지 밝혀진 것은 ‘아 그 사람들 억울하게 죽었어’ 뿐이죠.”
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폭력에 대해 새로운 접근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국가폭력으로 인한 희생’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이 같은 일들이 가능했는지, 기획자는 누구인지, 이를 가능토록 만든 국가 전체 시스템에 대해 ‘대해부’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45년 8월 15일부터 벌어진 국가폭력·인권침해 피해자들도 이번 2기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취재룸J는 1974년, 1988년 두 차례 국가의 고문 피해를 당한 송운학 상임대표와 1980년대에 벌어졌던 녹화공작 피해자인 조종주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을 만나 2기 과거사위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8명 사법살인’ 긴급조치 4호, 탄생 과정 밝혀야”
‘유신 공포’의 정점이었던 1974년.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학생들 사이에는 유신체제 반대 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도 꿈틀거렸다. 하지만 4월 3일 오전,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대학과 광장에 진을 치고 있었고, 계획했던 가두시위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미리 학교 밖에 있었던 일부 학생들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명의의 유신체제 반대 유인물을 곳곳에 뿌렸다.
그러나 이날 밤 10시. 정부는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하며 “민청학련이 반국가단체이며,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180명이 구속됐으며, 이 중 8명은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당시 서울대 3학년이었던 송욱학 상임대표 역시 시위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폭력에 대해 새로운 접근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취재룸J
민청학련 관련 사건 기록물. 사진=국가기록원
그는 “학교에서 시위를 하려고 계획을 했는데 유인물에 나온 이름(민청학련)을 나도 몰랐다”면서 “그런데 그날 밤 ‘이 단체가 반국가단체고 배후에 북한과 연결되는 불온세력이 있다’고 발표가 나온다. 어떻게 12시간도 안돼서 배후까지 파악하고 긴급조치 4호까지 만들어 놓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단 조사를 해야 할 거 아닌가. 학생들을 상대로 왜 시위를 벌였으며 정말 배후에 북한과 연결이 돼있는지”라며 “그런 것도 없이 마치 다 알고 있는 신도 아니고 모든 그림을 그려놓고 끼워 맞추기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아 그 사람들 억울하게 죽었어’, ‘그때는 표현의 자유가 없었어’ 정도로 정리가 됐지만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들이 발생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없다”며“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인지, 유신헌법은 어떤 식으로 기획이 됐는지,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는지,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기획안을 보고한 것인지 이런 것들을 모두 밝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운학 상임대표는 “우리가 규명해야할 과거사 대부분은 국가가 스스로 헌법적 가치와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위반했던 사건들”이라며 “핵심은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해자들, 과거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인지 알았으면...”
박정희 정권이 물러나고 신군부가 들어선 후에도 학생들의 탄압은 계속됐다. 학생 시절 유신정권과 싸웠던 송운학 상임대표의 10년 후배인 조종주 씨는 전두환정권의 녹화공작 피해자다. 1980년 9월 4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전두환정권의 녹화공작은 철저하게 운동권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두환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강제 징집돼 소위 ‘정신 순화’ 공작을 당했던 녹화공작 피해자들. 이들 역시 2기 과거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강제징집 녹화공작은 공식 확인된 피해자만 2,417명. 이 중 취재룸J가 만난 조종주 사무처장은 1190번 피해자다. 그는 녹화공작 피해자들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종주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은 “우리에게 가해했던 사람들이 ‘우리는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했다’라는 것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취재룸J
녹화공작 피해자는 강제징집, 녹화공작, 선도공작 피해자로 나뉜다. 강제징집 피해자의 대부분은 군에서 녹화공작을 받았고, 정상적인 절차로 군에 입대한 피해자 중에도 운동권경력이 드러나면 녹화공작을 받기도 했다. 선도공작은 공식적으로 녹화공작이 종료된 후 비밀리에 진행된 녹화공작인데, 선도공작 피해자가 전체 2,000명이 넘는 피해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조종주 사무처장은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다보니 정통성이 없다는 공격을 받았다”면서 “그 중심이 학생들이었는데 일부는 현행법상 위반으로 구속을 시키지만 현행법으로 적용이 안 되는 사례들은 군대로 끌고 갔다”고 말했다. 조종주 사무처장 역시 만 18세에 신체검사도 받지 않고 군으로 끌려갔다.
이어 “군대 가서 일단은 똑같이 군대 생활을 한다. 그리고 보안대에서 계속 감시·관리하다가 일부는 어느 시점에 데리고 가서 ‘심사’를 한다”며 “그곳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쓰라고 하는데, 피해자들은 이것을 ‘나의 20년’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쓴 ‘나의 20년’ 기록을 토대로 군은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과 대조를 하고 학생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등을 낱낱이 조사한다”며 “이후부터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순화’ 작업을 하고, 어느 정도 순화가 됐다 싶으면 외부로 내보내 프락치 활동을 시켰다”고 말했다.
전두환정권 당시 녹화공작 관련 기록물. 프락치 활동에 대한 계획이 담겨있다. 사진=취재룸J
녹화공작 과정에서 고문을 받다가 몸이 상하는 경우도 많았다. 군 전역 후에도 정신적인 질병을 앓는 피해자들도 있다. 조 사무처장은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며 이들의 피해 사례를 기록했다.
녹화공작을 받다가 사망한 9명 중에는 유서가 발견된 사례도 있다. 서울대학교 79학번 한희철 씨다. 한씨는 정상적인 절차로 군에 입대했다가 학생운동 전력이 드러나 보안대로 끌려갔다. 이후 보안대에서 1차 조사를 받은 그는 심한 압박감을 느끼다 두 개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 내용에 대해 조 사무처장은 “외부로 보낸 유서에는 자신이 보안대 조사를 받던 중 실토했던 것들을 적으며 조치를 취해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담겼다”면서 “나머지 군대 남긴 유서는 담담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글로써나마 남길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조 사무처장은 한 씨의 유서 내용을 말하던 중 울컥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당시 22살, 23살 청년이 죽음이 아니면 나의 양심과 나의 친구들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라며 씁쓸해했다.
전두환정권의 녹화공작은 주로 1983년 짧은 시기에 군 의문사 사건이 터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봤고, 국회에서도 공전이 붙기도 했다. 당시 의원 신분이었던 이해찬 전 대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녹화공작을 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군은 많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희망이 있다면 지금의 군은 좀 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종주 사무처장은 이번에야말로 강제징집 녹화공작의 감춰진 진실이 모두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 사무처장은 “지금 군에서는 모든 자료를 내놓겠다고 말한다”면서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직접적으로 연루된 당사자들이 다 물러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마지막 바람으로 “내가 하는 행위가 어디에 닿는지 최소한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옛날에 우리에게 가해했던 사람들, 가해 집단들이 ‘우리는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했다’, ‘법적으로 하자 없이 한 것’이라는 일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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