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주범인 조주빈 검거 후 1년이 지났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인 만큼 대중의 관심과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각심도 높았던 지난 1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딥페이크(합성 성착취 영상물) 범죄로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2의소라넷’ 사이트를 제재해 달라는 청원이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취재룸J는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 활동가들과 성폭력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인인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를 만나 <n번방 사건 1년 후 디지털성범죄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가장 큰 목표는 시위죠. 코로나만 나아지면 대규모 시위를 꼭 한번 하고 싶습니다.”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는 이름 그대로 n번방 사건 강력 처벌 촉구 시위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가 터지면서 계획했던 대규모 시위는 열지 못했다. 시위 외의 방식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n번방 사건 피고인 재판을 방청했고, 이를 계기로 방청연대를 꾸리고 현재까지 재판 후기를 알리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대규모 시위를 꼭 한 번 열고 싶다”던 재판팀 팀장 멸균(활동명) 활동가는 이 조직을 처음 구상한 인물이다. 조주빈이 검거되기 전 기사를 통해 사건을 접했던 멸균 활동가는 충격과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주빈이 잡히기 전 n번방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면서 “언론에서 피해사실을 자세히 기술하는 자체도 충격이었고 사건 자체가 끔찍했다. 왜 이런 사건이 공론화가 안됐는지, 왜 이렇게 기사를 쓰는지도 이해가 안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후에 SNS에서 시위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SNS에 공유를 했지만 별 반응이 없어서 내가 한번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며 “큰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이런 활동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 무작정 운영진을 모집했는데 여기까지 오게됐다”고 말했다.
사진=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
멸균 활동가는 지난해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된 날 "악마의 삶을 끝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의 발언에 대해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취재룸J
시위를 구상하던 중 코로나가 터졌고, 조직도 고민에 빠졌다. 그 무렵 순천지법에서 ‘로리대장태범’이라는 닉네임으로 n번방에서 성착취물을 유포한 배모 군(18)의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재판을 방청하게 됐다.
멸균 활동가는 “기사로만 접하는 것보다 재판에 직접 가보니 느낌도 다르고 재판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면서 “그때부터 방청연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재판은 물론 조주빈을 비롯한 n번방 일당의 신상공개 날에도 모두 찾아갔다”고.
그는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된 날, 그의 발언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가 한 짓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는건지 모르겠고, 어떻게 자기 입으로 자신을 악마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범죄로 잡혔는데 피해자에게 진심을 담아 죄송하다고 말하지도 않는 조주빈을 보면서 참담한 기분이었다.”
멸균 활동가는 n번방 사건 연루자 중 만 20세 미만의 가해자들도 포함된 것과 관련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불법사이트에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이를 ‘야동’이라 부르면서 그게 남자들의 문화라고 말하는 사회분위기를 생각하면 너무나 예상된 결과”라면서 “19세 미만 관람불가 설정도 안 된 자극적인 미디어들을 어릴 때부터 접하면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범죄에 연루된 게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이어 “제대로 된 성인지감수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며 “사법부 또한 응당한 처벌을 하고 이런 짓을 하면 큰 벌을 받을 수 있다.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판결로써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n번방 사건 이후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게 활동가들의 지적이다.
언론팀 팀장인 우주(활동명) 활동가는 “조주빈 일당 검거 당시에만 위축된 척 했을 뿐이지 애초에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지지도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지고 의제강간 연령이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바뀌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면서도 “텔레그램 같은 사적 대화방에서 유포되는 성착취물은 (신고하기 전에는) 잡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n번방이 텔레그램에서 터진 것 아니냐”며 꼬집었다.
그러면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경찰의 위장수사를 가능토록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도 개정됐지만 이는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만 해당하는 것”이라며 “디지털성범죄는 성인 여성도 충분히 당할 수 있고 실제로도 피해자가 있는데도 성인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그루밍은 채팅 애플리케이션 등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과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약점을 잡아 성적 노예나 돈벌이로 이용하는 범죄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인 온라인 그루밍 범죄다. 그러나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관련법 개정안은 온라인 그루밍 범죄에 대해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요구해 이에 대한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에 관한 양형기준도 새롭게 마련됐다. 하지만 이 역시 피해자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우주 활동가는 지적한다.
그는 “양형참작에 고려가 되는 감경인자의 문제가 많다. 예를 들면 가해자들이 유포한 영상들을 삭제하고 재확산을 막는 노력을 하면 그게 특별한 감경인자로 참작된다”면서 “가해자가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인데 그것을 감형사유로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디지털성범죄지원센터라는 곳에서 성착취물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모니터링 활동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피해자를 고려해 모니터링 요원들의 성별도 전원 여성으로 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디지털성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범죄로 고통을 받는 피해자들도 늘고 있다.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합성 기술을 뜻한다. 실존하지 않는 사람을 영상물로 만들거나 실존하는 사람의 사진을 이용해 하지 않은 행동을 한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시위팀 총개 안개(활동명) 활동가는 “전부터 딥페이크 범죄가 여성 연예인들을 상대로 자행됐다고 들었다. 그리고 트위터나 SNS로 지인능욕 계정이 운영이 됐다”며 “현재는 SNS가 활발해지면서 일반인을 상대로도 악용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진을 퍼가서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본보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성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쉽게 풀려났기 때문에 성범죄가 위중한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우주 활동가는 “텔레그램과 같은 어플을 통해서 여전히 디지털성범죄가 확산되고 있고, 올해 기준으로 회원수가 7만 명, 1일 방문자가 3만 명이 넘는 ‘제2의 소라넷’이라고 불리는 사이트도 논란이 됐다”며 “작금의 상황을 보면 한국 사회는 디지털성범죄를 근절할 의지가 있는건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와 검·경찰은 n번방 유료회원이나 일반 회원들도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잡겠다고 했지만 일부 회원이 검거됐다는 소식 외 재판이 진행된다는 소식은 전혀 없다”며 “예견은 했지만 결국 몇몇 주동자들만 잡아두고 방치해두고 있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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