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조사인력 채용 문제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조사1국장 채용에 지원했던 한 인사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진실화해위의 채용 전횡을 바로 잡아달라’는 글을 올리며 “최종 합격자는 위원회 활동 기간(3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정년퇴직해야 하는 인사”라며 “투명해야 할 국가기관이 사조직처럼 개인 선호 중심의 편향이 작동했다”고 주장했다. 취재룸J는 해당 청원글을 올린 당사자(이하 A씨)를 만나 조사 1국장 채용 과정에 대해 짚어봤다.
위원회는 조사1국과 조사2국으로 나뉘어 진다. 조사 1국은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을, 조사2국은 권위주의 통치 시절의 국가폭력 및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룬다. 조사1국은 청원인의 주장에 따라 최근 채용이 완료됐고, 조사2국은 앞서 진행된 채용이 무산되면서 현재 다시 채용이 진행 중이다.
2기 위원회 출범과 함께 신청서를 대거 접수했던 민간인학살전국유족회 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호상 유족회 의장은 “지금 위원회 활동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며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청자들에 대해 출석을 요구하는 건이 한 건도 없다. 도대체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범 6개월이 지난 위원회에 조사국장 채용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A씨는 조사1국장 채용 결과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한국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학살을 조사하는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10년 12월에 종료된 1기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을 역임한 뒤 민간인학살 피해 유족들의 도움으로 재단이 설립됐다.
그는 “1기 위원회 활동 당시 부역혐의 사건과 보도연맹 사건을 주로 맡았고, 10개의 보고서를 써냈다”면서 “보통 조사관은 많이 쓰면 4개 정도 쓴다. 공무원들은 성적을 매기는데 성과급 면에서도 항상 높은 등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강조 하고 싶은 것은 1기 위원회가 끝난 이후 활동”이라며 “보통 활동이 끝나면 다른 일자리를 찾지만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좋게 재단이 만들어져 1기 위원회에서 했던 일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1기 위원회는 한국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학살을 전쟁의 부수적 피해로 봤다. 그러나 A씨는 재단을 통해 조사와 연구를 이어가면서 민간인학살이 조직적인 국가범죄 및 전쟁범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2기 위원회가 발족 될 시 1기 때와는 다른 관점에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1기 위원회의 민간인학살 조사 부분과 2기 위원회의 민간인학살 조사의 목적이 달라야 하고, 이에 맞춰 위원회 종료 즈음에 종합보고서를 정리해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 채용되신 분은 나이 제한 규정 때문에 3년의 임기를 못 채운다. 조사를 지휘한 국장이 종합보고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위원회의 채용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위원회는 조사국장 채용 공고를 통해 별정직공무원의 근무상한연령을 60세로 공고했다. 또한 경력으로는 ▲17년 이상의 관련 분야 실무경력 ▲4급 상당 이상의 공무원으로 2년 이상 관련 분야 실무경력 ▲학사학위 취득 후 14년 이상 관련 분야 실무경력 등을 요구했다. 물론 근무상한연령은 지원 당시 나이를 말하지만, 위원회가 활동 기한이 정해진 점을 고려한다면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조사1국장에 채용된 B씨는 1990~2015년 언론사에서 사회부와 정치부팀장, 부국장 등을 역임했다. 재직 중 보도연맹과 형무소 집단학살 사건을 보도한 바 있고 1기 과거사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언론사 퇴직 후에는 2016~2020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연구 용역을 받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위안부’와 일본전범에 대한 조사한 바 있다.
이이 대해 A씨는 “물론 훌륭한 분이시지만 언론사 경력이 대부분인데, 보도행위를 조사행위로 보는 경우는 없다”면서 “실제 몇몇 언론사 출신 인사들이 2기 위원회 조사관에 지원했다가 서류에서 탈락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탈락한 사실도 통보 없어”
“위원장과 공유됐던 채용기준에도 안맞아”
A씨에 따르면 지난 3월 22일 위원회 측은 3배수 원칙에 따라 마지막 관문인 역량평가를 받을 3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A씨는 인사검증을 위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후 인사혁신처에서 진행되는 역량평가 자리에서 3명이 만났고 그 자리에서 서로의 이력을 알 수 있었다고. 그러나 3월 22일 이후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어떠한 통보도 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보완서류를 제출하라는 통보에 두 차례 보완을 완료 한 후에도 별다른 소식 없이 두 달이 흘러갔다.
A씨는 취재룸J와 인터뷰를 진행한 6월 3일에도 자신이 탈락했다는 공식적인 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는 “2주 전에 제가 아닌 다른 분이 출근할 거란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도 위원회 측에서 떨어졌다는 통보조차 없었다”면서 “결국 결례인줄 알면서도 정근식 위원장에게 연락을 드렸고, 다른 사람이 출근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용을 좀 설명해 주실 수 있냐고 하니, 위원장님께서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하시더라”면서 “앞서 소통했던 내용과 달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A씨가 말한 ‘앞서 소통했던 내용’이란 지난해 11월 있었던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나눴던 대화를 말한다. A씨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조사국장 채용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당시 위원장과 면담자들이 공감했던 원칙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1기 위원회 경험이다. 물론 이는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당시 정근식 위원장은 “1기 위원회 경험이 있다고 해서 유리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1기 위원회 종료 후 활동 및 경력이 주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청원인은 “저 같은 경우는 1기 위원회 종료 후 재단을 통해 10년 가까이 같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 부분은 결격사유가 없겠다고 판단했다”면서 “저 역시 1기 위원회 경력자뿐만 아니라 역사연구 관련 단체 경력자들도 고루 채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나이 얘기가 나왔는데, 위원장님은 ‘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셨다”면서 “그런 내용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채용 결과에 대해 조금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위원회가 일요신문 취재에서 ‘지원자의 나이는 몰랐다’고 하는데 면접관들은 몰랐어도 위원회나 인사 관련자들은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사원 채용에 있어 정근식 위원장의 재량권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앞서도 사무처장 임명 당시 위원장의 재량권의 범위를 두고 잡음을 빚기도 했다. 과거사정리법에 따르면 사무처장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이에 국민의힘 추천 위원들은 위원회가 심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 추천 위원들은 ‘사무처장 인사는 위원장의 재량’이라고 맞서면서 갈등을 빚은 것.
과거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시민들은 위원회가 출범부터 현재까지 정치적인 소모전을 펼치며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처럼 위원회의 인사 문제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제보자가 지원했던 조사1국장은 최근에야 채용이 완료됐지만 조사2국장은 현재까지 채용이 완료되지도 않은 실정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조사국장은 가장 먼저 뽑아야 하는 사람이고 적어도 4~5월에는 뽑혔어야 할 자리다. 기사도 나왔지만 위원장님도 사무처장 임명 문제로 많이 고생하셨던 걸로 드러나지 않았나”라며 “그럼에도 인사 문제에 대해 위원장님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밑에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있는지 몰라도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위원장뿐이고, 그게(제어가)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사퇴를 하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2기 위원회 법안 통과에 앞서 위원 구성에 대한 내용에 반대 의견을 냈던 일이 이번 채용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2012년부터 2기 위원회 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국회를 찾아다니며 해왔다. 1기 위원회 때 다루지 못했던 사건들을 1~2년만 연장해서 하면 되겠다 싶었다”며 “그런데 재작년 11월 갑자기 이상한 법안이 나왔다.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구성을 여당과 제1야당이 4:4로 뽑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말다툼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은 버리겠다는 걸로 밖에는 안들렸다”고 말했다.
A씨는 인터뷰 내내 “채용에 떨어져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일까 우려스럽다”면서도 조사1국장 채용 과정에서의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1기 때는 적어도 이 판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기준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적용을 하려고 애를 썼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며 “2기 때는 제 경우만 얘기 하는거지만 그런 게 지켜지지 않았다. 내정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적어도 두 달은 고생하지 않았다. 저 역시 제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2000년에 위원회 조직이 처음 생긴 후 여러 위원회가 생겼다.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제도가 이제는 직장 개념으로 바뀌면서 피해자들을 동원해 조직의 연장을 위한 정치적인 노력만 하고 있다”면서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저분들이 3년 안에 모든 걸 다 끝내고 다음 형태로 넘어갈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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