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조나리 기자 승인 2021.07.07 13:02 | 최종 수정 2021.07.07 14:07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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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이 중사의 빈소

“그만하면 안돼요? 진심으로”

공군 성추행 사건 가해자인 장모 중사는 이 중사의 거부의사에도 추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 중사는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총 3차례 추행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결국 차에서 내려서야 끔찍했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 중사는 이후 더욱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중사는 자신의 피해를 신고한 뒤 가해자를 비롯한 부대의 회유와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 방혜린(해병대 대위 전역) 군인권센터 상담실장은 “직접적인 가해는 묻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후에 벌어지는 주변의 모함과 따돌림과 같은 2차 가해다”라고 지적했다.

군대 내 성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매년 군에서는 800여건의 성폭력 신고가 접수되고 있고,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이 중사가 처음이 아니다. 취재룸J가 만난 군인권센터와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은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너는 여자가 아니다” “여군이 무슨 군인이냐”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이 중사 사건과 관련 “여군이 군대 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남군과 같은 동료 군인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또한 군대조직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짚고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군대에서도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매뉴얼이 없지는 않다. 이 중사 역시 이를 믿고 상관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매뉴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규정이 없는 게 아니라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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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여자는 아닌데, 여자여야 하는 문화 속에서 여군이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진=취재룸J

유랑 활동가는 “여군들은 군대에 들어가면 ‘넌 여자가 아니고 군인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렇게 여성성을 지우기를 강요받는 한편 어떤 상황에서는 여자로서 역할을 하기를 강요받는다”면서 “옛날에는 더 심했지만 요즘도 아주 없어지진 않았다. 여군이 원하는 것은 자신을 동등한 동료로,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으로 대우받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자는 아닌데, 여자여야 하는 문화 속에서 여군이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면서 “그 순간 여군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작동한다. ‘이래서 여군은 안돼’ 따위의 취급을 받기 때문에 더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군대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방혜린 상담팀장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군대의 조직문화 자체가 굉장히 남성중심적이고 폐쇄적이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감성이나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다른 사조직보다 강하다”면서 “특히나 성범죄는 일반 사회에서도 암수율이 높은 범죄인데 군이란 조직의 특수성이 결부되면서 피해자가 추가적인 가해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신고도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방혜린 팀장이 군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비해 아주 바뀐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무엇이 성폭력이고, 가해상황인지 인지하는 것은 훨씬 나아졌다는 것. 이에 신고율도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건을 처리하는 기본 메커니즘이나 조직문화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방 팀장의 평가다.

실제로 2018년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때에도 군대는 조용했다. 이에 대해 방혜린 팀장은 “군대 내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드러날 수 있을까? 고백들이 이어질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주목을 받았는데 결국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조직문화가 제대로 진단되거나 확인되지 못했고, 여전히 군대에서 처리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방 팀장의 지적처럼 우리 군은 매년 800여건의 성폭력 신고가 접수되지만 일반 사회처럼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내부 징계를 통해 사건이 처리되기 때문이다. 징계도 기본적으로는 중징계를 하도록 돼있지만, 보통 정직 아래로 떨어져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가 기소까지 가는 비율이 적은 것은 전형적인 ‘내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다. 현재 군인사법상 성범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선고를 받을 경우 파면하도록 돼있다. 때문에 재판까지 가지 않고 내부에서 징계로 처리한다는 것. 특히 징계냐 재판회부냐를 결정하는데 있어 지휘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방혜린 팀장의 설명이다.

방 팀장은 “기본적으로 지휘관에게 많은 권한들이 부여가 돼 있고, 더욱이 징계는 지휘관의 권한”이라며 “이번 사건처럼 레이더정비반이라든가 해군이나 공군과 같이 기술이 위주인 군들은 반장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밝혀내야...”

이번 사건에서는 보고체계의 심각한 문제점도 드러났다. 이 중사가 사망한 후 공군군사경찰은 이 중사의 사망을 ‘단순 사망’이라고 수정해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 같은 허위 보고는 유족에 의해 사건이 알려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한 후에야 드러났다. 그러나 국방부장관은 공군군사경찰의 허위 보고 사실을 인지한 후에도 열흘 가량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국방부가 적당히 꼬리자르기를 하려했던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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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혜린(해병대 대위 전역) 군인권센터 상담팀장은 “피해자가 신고 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계속 내몰렸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감정이었을지는 가늠할 수도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사진=취재룸J

방혜린 팀장은 “경험적으로 봤을 때도 이번 사건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군인이 보고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도 있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총장이 책임지라는 것인데 굳이 왜 중간에서 잘라냈을까? 분명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이 중사는 상관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뒤 15일간이나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회유와 협박을 이어갔다. 이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아동학대와 성범죄 피해자에 한해 피해자 국선 변호인이 선임되기도 한다. 이 중사 역시 피해자 국선 변호인이 선임됐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이 중사는 전출을 요청했고, 공군은 그를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출했다. 그러나 이 중사는 그곳에서도 따돌림을 겪어야 했다.

방혜린 팀장은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국선 변호인이나 신뢰관계인을 둘 수 있도록 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그럼에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다 보니 피해자는 계속 내몰렸을 것이다. 피해자가 마지막 순간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감정이었을지는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무슨 조사를 하고 있는 건지, 뭐를 위한 조사를 하는건지 너무 불명확하다”면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새로운 의혹이 나오고 이에 대해 해명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유족들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정조사를 하게 된다면 이번에야 말로 얘기가 돼야 하는 것은 왜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또 다른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 자살 사건인 2013년 육군 대위(여군) 사망 사건과 2017년 해군 대위(여군) 사망 사건 피해자는 신고도 하지 못했다. 측근이나 유서를 통해 피해사실을 알려 사건이 드러난 경우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피해 직후 바로 상관에 신고를 했음에도 2차 가해를 막지 못했다.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역시 이에 대해 “어떤 절차를 거쳤기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해 낱낱이 조사를 해야한다”면서 “피해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다 했다. 그럼에도 매뉴얼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밝혀내야 하고, 그것이 군대 내 성폭력이 반복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법원, 존재 이유에 대해 고찰해야

기나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피해 여군도 있다. 상관 두 명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7년 만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이다. 1심 군사법원은 가해자들에게 모두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는 모두 무죄로 뒤집혔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피해 여군은 함선 근무를 하게 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신입 장교였다. 직속 상관은 수차례 피해 여군을 성폭행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알렸음에도 가해자는 “너가 남자랑 관계를 안 해봐서 그런다”며 성폭력을 이어갔다. 급기야 피해자는 임신을 하게 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장에게 알렸지만, 함장이 피해 사실을 빌미로 또 다시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이 사건이 굉장히 나중에 드러나게 됐다. 2017년 1차 가해자에게는 징역 10년, 2차 가해자에게는 징역 8년이 선고됐는데 다음해인 고등군사법원(2심)에서는 모든 가해자가 무죄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심 재판부는 강간죄에 있어 폭행과 협박의 기준을 매우 좁게 해석한 것 같다”면서 “2심 재판부는 ‘밀치거나 어깨를 누른 행위는 저항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나왔는데, 가해자가 유형력을 행사한 사실은 분명하고 상명하복 질서가 뚜렷한 군대 안에서는 피해자가 저항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2심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공대위는 고등군사법원 판결이 나온 지 딱 2년이 된 날에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에 조속한 판결을 촉구했다. 재판이 시간을 끌수록 피해자의 불안한 삶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이 사건 피해자는 대법원 판결 만을 기다리며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가해자들이 무죄판결을 받을 시 더 이상의 군 생활은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랑 활동가는 “가해자들이 현재 전역 상태가 아니라 휴직 상태기 때문에 무죄가 확정되면 다시 군대로 돌아올거고, 그렇게 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몸과 마음을 챙기면서 지내고 있지만,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피해자의 일상회복이 달린 문제임과 동시에 수많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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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지난 6월 2일 저녁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압송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연일 논란이 되면서 군사법원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다시금 커지고 있다. 특히 군사법원이 성폭력 사건에 있어 기소율이나 실형 선고율이 민간법원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반면 집행유예 선고율은 높다는 점에서 사법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혜린 팀장은 “최근 군사법원이 판결문 공개를 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풀어주기도 한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고 근무를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풀어주는데 민간법원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라며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나는 구조다. 군대는 사법권이 행정권 안에 들어간 형태기 때문에 마치 행정권을 가진 지휘부를 보위하기 위한 역할들을 훨씬 많이 수행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군사 범죄를 전문성을 갖고 있지도 않은 군사법원이 굳이 처리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군의 특수성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더 나아가 우리는 수사 자체부터 민간법원에 이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2심법원부터 이양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일종의 옴부즈만 제도인 군인권보호관을 속히 설치해야 한다. 법은 만들어놨는데 실행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고 군이 어떻게 사고를 처리하고,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하는지 철저히 감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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