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암 입원비’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조나리 기자 승인 2021.07.30 16:54 의견 0

이용범 암환자를 사랑하는 모임(암사모) 공동대표가 취재룸J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삼성생명 고객플라자 안에서 암 입원금 미지급 문제로 542일째 농성 중이던 암환자 4명과 662일째 삼성생명 앞에서 릴레이 집회 중이던 17명의 암환자들이 지난한 투쟁 끝에 삼성 측과 협상이 타결됐다”

지난 9일 삼성피해자공동투쟁과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 환우 모임’(보암모)은 삼성생명 보험가입자인 암환자 21명의 암 입원금 지급 투쟁을 마친다고 발표했다.

이들 암환자들은 요양병원 입원에 대해 직접적인 암 치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입원비(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삼성생명을 상대로 점거 농성을 벌여왔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암 환자의 542일간의 농성을 방치한 삼성생명의 고객에 대한 인권유린은 규탄할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합의를 이룬 것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의 문제가 오랜 투쟁으로 일부 합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삼성생명과 보험사들은 의사도 모르는 ‘직접 치료’를 운운하고 있다”며 “약관법 상 ‘작성자 불이익 원칙’도 무시하고 회사 내부 규정을 근거로 암보험 가입자들을 농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암 환자들은 금융감독원이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봤고, 뒤늦게 기관경고를 내렸지만 금융위원회는 중징계 결정을 7개월째 미뤘다”며 “이제라도 암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삼성생명 측도 짧은 입장을 냈다. 삼성생명은 “집회 및 농성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조속히 해소하는 차원에서 시위·농성을 중단하기로 최종 합의했다”면서도 이번 합의가 향후 있을 금융위원회의 징계 수위 의결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삼성생명에 대해 중징계인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과태료와 과징금 등 포괄적인 징계 수위는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발효된다. 기관경고 제재가 발효된 후 1년간 금융당국의 인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삼성생명, 암 입원비 지급 전부 해결하라”

보암모와 삼성생명의 협상 타결 기자회견 후 또 다른 암 환자 단체인 ‘암환자를 사랑하는 모임’(암사모)은 즉각 반발했다. 삼성생명이 21명의 암환자와 ‘야합’을 벌이고 전체 보험계약자를 우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재룸J는 이용범 암사모 공동대표를 만나 여전히 진행 중인 보험사의 암 입원비 문제를 들여다봤다.

이용범 대표는 삼성생명의 암 입원비 지금 문제는 사측과 합의한 21명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2년의 점거 투쟁이 21명만 암 환자분들만 한 게 아니다. 밖에서 투쟁하던 분들은 많을 때는 150명씩 와서 항의도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체력적으로 버텨주지 못했던 것”이라며 “건강상 오지 못하시는 분들은 훨씬 많고, 그 사이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합의를 했다면 최소한 몇 가지 공표되는 내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기습적으로 21명의 암 환자분들의 문제만 해결해 준 셈”이라며 “삼성생명은 21명과의 합의를 발표할게 아니라, 모든 보험가입자들을 상대로 처음 약속대로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발표를 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모든 계약은 계약 당시 조건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게 상식인데, 그 상식을 확인해 달라는 요구를 삼성생명은 계속 무시하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앞으로도 현재 방식대로 문제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아니면 다른 환자들도 2년씩 점거 농성을 해서 받아내라는 말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암 환자들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후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는다. 본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은 통상 수술 후 1주일 이내다. 이후 10~20회의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자택에서 가료를 하며 항암 치료를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게 암 환자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본 병원에서 퇴원 즉시 요양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게 된다.

요양병원에서는 암 환자들의 항암치료 후유증을 치료하고, 그 다음 예정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면역치료가 진행된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이 기간 요양병원 입원에 대해 암에 대한 직접 치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분쟁이 생겼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암 환자들이 암 수술 후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해사정사가 찾아와 일부 지급에 사인하라는 요구를 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취재룸J가 만난 이용범 대표 역시 2016년 10월 6일 아내가 암 수술을 받은 후 같은달 9일 퇴원과 함께 바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이 대표의 아내는 다음해인 2017년 3월까지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본 병원에 예정된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교보생명 측은 요양병원 입원비 청구에 대해 30일치만 지급을 한 후 남은 기간의 입원비에 대해 50%만 받는 것에 합의할 것을 종용했다.

이 대표는 “계약에 따라 1,2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었는데 300만원만 주고 남은 900만원은 못주겠다고 하더라. 손해사정사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서 50%에 합의를 하면 지급하겠다길래 거절했다”며 “이후 암환자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금융감독원에 민원도 넣고 청와대 청원도 하면서 싸운 끝에 2년 만에 남은 금액을 전부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암 환자들은 치료와 회복하기도 바쁜데 보험사에서 돈 못준다며 소송하라고 하면 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면서 “그 점을 보험사들이 악용하는 것이다. 저도 운이 좋게 암환자 단체를 알게 돼 어렵게 받은 것이지, 그런 정보도 모르는 암 환자분들은 그냥 당하는 게 지금의 보험사다”라고 비난했다.

취재룸J가 제공받은 1994년 11월에 발행한 삼성생명 보험증권에 따르면 ‘피보험자가 암 치료를 목적으로 4일 이상 계속 입원시’ 암입원급여를 지급한다고 돼있다. 이후 약간의 표현의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는 ‘암의 직접 치료’라는 표현이 업계에 정착됐다. 삼성생명은 내부 규정을 들며 ‘직접 치료’란 수술, 항암, 방사선치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요양병원에서는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입원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취재룸J가 제공받은 1994년 11월에 발행한 삼성생명 보험증권에 따르면 ‘피보험자가 암 치료를 목적으로 4일 이상 계속 입원시’ 암입원급여를 지급한다고 돼있다. 이후 몇차례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는 ‘암의 직접적인 치료’라는 표현이 업계에 정착됐지만 암 환자들은 암 치료를 목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느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취재룸J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암 치료 방법이 다양화되고 있어 치료 방법을 둘러싼 분쟁도 발생하고 있다.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암 환자들로서는 모두 황당한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용범 대표는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언론에서는 약관이 모호하다고 얘기를 하는데, 쟁점은 암의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을 했느냐, 안했느냐고, 이는 담당 의사의 소견서에 들어있다”라며 “이를 자의적으로 자기들에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소급적용하는 것은 약관법과 기본 계약법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문장이 아니다. 그런데 그 문장을 언론은 애매하다고 얘기를 한다”면서 “언론사에서 광고라든지 여러 이해관계로 자유롭지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암 환자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면서 “삼성생명은 직접 치료가 수술, 항암, 방사선이라고 기재된 계약 당시 증빙서류를 계약자인 암 환자들에게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그냥 그렇다고 주장하면 끝인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처럼 암환자와 보험사 간의 갈등이 깊어지자 2018년 금감원은 ▲말기암 환자의 입원과 ▲집중 항암치료 중 입원 ▲암수술 직후 입원에 대해서는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항암치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체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입원하는 것이 앞으로 예정돼 있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경우라면 암의 치료를 목적으로 한 입원에 해당한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금감원은 보험계약자의 민원 내용을 조사하고, 기준에 합당하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 각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권고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의 지급권고를 인용하는 비율은 삼성생명의 경우 타 보험사에 비해 여전이 낮은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만 해도 1월부터 11월까지 암 입원보험금 관련 분쟁조정신청은 767건 달하고, 이 중 금감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49.9%에 해당하는 383건에 대해 지급권고 결정을 내렸다. 383건 중 삼성생명 건은 328건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이마저도 231건(70.4%)만 수용하고, 나머지 97건(29.6%)은 일부 수용하는데 그쳤다.

“금감원, 보험가입자 보호하는데 힘써야”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에서도 보험가입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용범 대표에 따르면 암사모는 금감원에 보험가입자를 위한 담당직원을 배치해 민원 처리 안내와 보험가입자를 위한 각종 자료와 판례 제공 등의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암 환자들은 어떤 환자가 승소해서 보험금을 지급받았는지, 어떤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지 이런 정보를 찾기 쉽지 않다”면서 “이런 서비스를 금융감독원에서 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암 환자들에게 찾아가 해당 환자의 사례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승소한 판레를 거론하며 결국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상 금감원의 보험소비자 서비스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게 지금의 금융감독원이고 금융위원회”라며 “우리는 정당하게 계약 당시 계약 내용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합의금이나 위로금이 아닌 가입 당시 계약 내용을 이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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