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진화위 1년... 평가회서 터져나온 ‘한숨’

조나리 기자 승인 2021.12.30 10:03 | 최종 수정 2021.12.30 10:38 의견 0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시의원회관 서소문별관 2층에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1주년 평가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정국래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운영위원장, 김명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자문위원, 김구현 박사, 조종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위원회 사무처장. /사진=취재룸J

“우리 지역에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족 2명이 조사를 받았다 길래 내용을 물어보니 반역죄를 저지른 죄인 대하듯 4시간을 조사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더구나 1명 조사하는데 4시간 걸리면 하루 2명 조사하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 얼마나 조사할 수 있겠습니까?”

“강제징집 녹화선도 공작은 1980년대판 보도연맹 사건입니다. 제가 조사관을 만나 당시 상황을 쭉 설명했더니, 조사관이 그러더라고요. ‘군생활에 염증을 느끼셨군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시의원회관 서소문별관 2층에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1주년 평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와 1기 진화위 조사팀장을 역임한 김구현 박사, 조종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위원회 사무처장, 진화위 관계자 2명이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자로 나선 김명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자문위원은 “위원회 회의는 가급적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저희가 회의 방청 신청을 하면 대부분 거부당했다”면서 “때문에 이번 평가는 저희가 사건을 접수하고 담당 조사관과 접촉한 과정에서 느꼈던 문제들을 중심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첫 발제자인 김구현 박사는 2기 진화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김 박사는 “1기 위원회에서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서 진화위 위원이 뽑혔기에 정치적 편향이 적었다”며 “반면 2기 위원회는 위원장만 제외하고 8명을 전부 국회에서 구성하다보니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안건에 대해서는 하나도 통과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진화위는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분들도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떤 난관을 가져올지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또한 1기때는 신청자 분들이 대부분 사건 당사자였기 때문에 진술에 구체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분들은 고령이거나 돌아가셨기 때문에 대부분 증인이 손자, 조카, 며느리이다보니 진술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 때문에 조사관은 신청인의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직접 자료를 발굴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조사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사관들, 당시 시대상황 이해 부족”
“진화위, 소통 부재 문제 심각”

담당 조사관의 잦은 교체와 사건에 대한 이해부족도 문제로 거론됐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조종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현재 조사관들이 피해자들과 연령대 차이가 많고 우리와는 다른 세대를 살았기 때문에 당시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제가 강제징집 피해자 중 제일 먼저 가서 진술을 했는데 담당 조사관이 하는 말이 ‘군생활에 염증을 느끼셨군요’라고 하더라”라며 당혹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지적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은 전두환 정권 당시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징집해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양심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조종주 사무처장은 이어 “최근에는 담당 조사관도 바뀌었는데,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조사관이 금방금방 바뀌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가해자를 숨겨주는 조사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는 진실규명을 요구하지만 가해자는 어떻게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려 할 수밖에 없다”면서 “군의문사위원회에서도 가해자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2기 진화위는 그런 길을 가면 안된다. 가해자에 대한 책임 또한 명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3기 진화위는 여러 현실을 볼 때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이번에 진실규명이 되지 않으면 3기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가에서 이를 상설기구화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노력해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입장이다. 2기 진화위와 많은 노력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국래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운영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진화위가 소통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사진=취재룸J

2기 진화위에 가장 많은 신청 접수를 한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측은 진화위의 소통 부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정국래 운영위원장은 “진화위에 최근까지 접수된 신청건수는 11,618건이고 이중 7,281건이 민간인 학살 사건”이라며 “그럼에도 진화위는 민간인 학살 유족과의 원만한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기때는 운영됐던 피해사례 발표회도 2기때는 거부당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유족들을 위해 휴게실 설치도 건의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그나마 최근 받아들여진 요구는 직원별 자리 전화번호 공개가 전부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한 조사 실무자가 2기 신청서 기각율이 70~80%가 될 것으로 내다봤는데 유족들로써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얘기”라며 “1기때도 30%나 기각이 됐는데, 이를 정근식 위원장에게 얘기했더니 정 위원장님도 ‘그렇게 많이 기각됐냐’고 되물었다. 진실규명이 안되면 진화위가 있을 이유가 있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국래 운영위원장은 또 “전국에 민간인 학살지가 4,000여곳인데 표식하나 없이 귀신 나오게 방치해두고 있다”면서 “모든 학살지를 공개하고 진화위 조사자료를 학교에서 교육하는 등 재발방지 정책에도 진화위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들의 항의와 호소가 이어졌다.

한 유족은 “진화위가 조사를 할 때 가해자 이름을 가리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것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 유족은 또 “정근식 위원장이 어떤 심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계신지 궁금하다. 고령의 유족들이 지금 국회 앞에서 바람 맞아가며 하루 2시간씩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한번 와주실 수 있냐”면서 “그 자리에서 정말로 진실을 밝히고 싶은 것인지 지금 1년을 그냥 흘려보낸 것처럼 앞으로도 시간만 보내고 계실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하며 정 위원장의 책임을 강조했다.

또 다른 유족 역시 “이승을 떠난 유족이 너무나 많다. 제가 막내인데도 72살”이라며 “무고한 양민이 학살 당하고 70년을 감시 받아가며 살아왔는데 국가와 진화위는 유족들을 욕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보상금에 눈이 어두워졌다는 식의 폄하된 시선에 한없는 비애를 느끼고 있다”면서 “이번에야 말로 남은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진화위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청주에서 올라온 한 유족은 조사관의 태도와 늦어지는 조사 일정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12월 10일에야 청주 지역 유족 2명이 조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며 “같은 지역, 같은 사건, 같은 피해자들 중에 왜 2명만 조사를 받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2명에게 물어보니 반역죄인 취급 받으며 4시간을 조사받았다고 한다”며 조사관들의 태도를 비난했다.

이어 “피해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화나지만 신청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1명 조사하는데 4시간 걸리면 하루 온종일 해도 오전 1명, 오후 1명밖에 못하지 않겠느냐”면서 “조사관을 아무리 늘려도 지금같은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1년을 그냥 보냈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어떻게 하려고 이러느냐”며 호통을 쳤다.

이 유족은 또 “수도권은 모르겠지만 시골에서는 진화위가 뭔지도 모르는 실정”이라며 “진화위가 수도권이 아닌 지역 곳곳에도 홍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토론회 참여자들이 발제자들의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취재룸J

한편 이날 정협 진화위 대외협력팀장은 요족들의 입장 요구에 “진화위에서 형제복지원과 같은 인권침해 사건에 많이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언론의 관심도가 높다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 “기자들에게 민간인 학살 문제도 다뤄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다만 진화위가 언론에 많이 노출될수록 다른 피해자분들에게도 도움이 될거라고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홍보 문제도 지적하셨는데, 진화위가 규모에 비해 홍보예산이 적은편이다. 이번에도 증액을 국회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내년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홍보를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유족들에 대한 조사관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취재룸J>의 질문에 또 다른 진화위 관계자는 “저 역시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이었다”면서 “조사관들이 업무가 많다보니 피곤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2주에 한번씩 조사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주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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