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31일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6명을 태운 스텔라데이지호(선사 폴라리스쉬핑)가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이중 필리핀인 선원 2명이 구조됐고, 나머지 22명은 아직도 실종상태다.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은 이날 오후 11시 20분 경 (한국 시간), 한국 측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에 선박 침수 사실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발신했다. 그러나 이후 선원들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는 길이 311.89m, 선폭 58m, 적재 중량 266,141톤의 초대형 광석운반선이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정확한 침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노후 한 선박을 무리하게 개조한 데 이어 출항 당시부터 선체 곳곳에 결함이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따르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추정될 뿐이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스텔라데이지호 같이 유조선을 개조해 운항 중인 노후한 선박이 27척 이상(2019년 국내 기준)이다. 제2의 스텔라데이지호가 언제 또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정부의 수색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수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고 발생 후 2년만인 2019년 2월, 어렵게 개시된 심해수색을 통해 수색팀은 선체와 선원으로 추정되는 유해도 발견했다. 하지만 ‘발견’만으로 수색은 끝났다. 유해를 바다에 그냥 두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수색팀은 왜 유해품을 보고도 그냥 올라왔을까. 바로 우리 정부와 미국의 심해 수색업체인 오션인피니티와의 계약 문제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호 민원’ 스텔라데이지호
2017년 5월 10일 실종자 가족들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을 지속해달라는 내용의 서한문을 전달했다. 당시 청와대는 이를 새정부 ‘1호 민원’으로 접수했고, 적극적인 수색을 약속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간절히 원했던 ‘심해수색’은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심해수색은 선례가 없다는 게 당시 정부의 입장이었다.
결국 가족들은 직접 해외 심해수색 사례들을 수집했다. 아울러 시민들에게 받은 10만 국민서명을 다음해인 2018년 1월 2일 정부에 전달했다. 2017년 새정부 민원 1호였던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또 다시 2018년 새해 첫 정부 민원이 됐다.
정부는 그제야 심해수색을 검토했고, 그해 8월 14일 심해수색을 위한 예산으로 53억원이 책정됐다. 이후 조달청을 통해 국제입찰이 진행, 미국 업체 오션인피니티와 12월 28일 최종적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다시 해가 바뀌고 2019년 2월에야 시작된 심해수색에서 수색팀은 사람의 뼈로 추정되는 유해와 실종자의 물품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오션인피티니 측은 우리 외교부와의 계약을 이유로 유해를 그대로 바다에 두고 왔다. 또한 수색팀은 50일 정도로 예상된 수색 활동도 단 9일 만에 마쳤다.
정부와 오션인피니티사가 맺은 계약의 주요 내용은 ▲선체 발견 시 무인 잠수정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미확인 구명벌 위치 확인 및 선체 3D 이미지 작성 ▲기술적으로 가능한 경우 항해기록저장장치(VDR) 회수 등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계약서 전체 공개를 요구했지만, 외교부는 수색업체의 영업비밀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가족들은 2020년 4월 1심, 2021년 8월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전체 공개를 판시한 1심과 달리, 수색업체의 장비 내역과 수색 전략, 과거 실적, 금융계좌정보 등을 제외한 정보만 공개하라고 판시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포기할 수 없는 가족들
스텔라데이지호 2등 항해사인 허재용 씨 어머니 이영문 씨는 오늘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매일 2시간씩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9월 16일 취재룸J와 만난 허재용 씨 어머니는 “문재인정부 1호 민원이었던 사건인데 이 정부가 이제 다 끝나간다”면서 “오늘이나 될까, 내일이나 될까 내년이나 될까 하던 시간만 5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1차 심해수식이 황당하게 끝나버린 후로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서 “뼈 한조각이나마 찾아서 내 품에 안아보고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 바람은 그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홀로 몇 년째 1인 시위를 하는 허재용 씨 어머니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연대의 손길도 이어졌다. 촛불교회 활동가도 이날 함께 1인 시위에 동참했다. 그는 취재룸J와의 인터뷰에서 “1차 심해수색 당시 수색팀이 바다에서 유해로 추정되는 물품을 발견했음에도 바다에 그냥 두고 왔다”면서 “침몰 원인을 밝히고 유해를 수습하는 것이 심해수색의 목적인데 목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2차 심해수색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연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사항이기도 하다”면서 “지금이라도 2차 심해수색을 개시해 실종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시 대선후보 만나러 간 어머니
사고 후 5년이 지난 지금, 허재용 씨 어머니 이영문 씨는 다시 대선 후보들을 향해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을 밝히고 아들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아무도 이 호소가 5년이나 걸릴 줄을 몰랐다. 이영문 씨를 처음 만난 후 4개월 뒤인 2022년 2월 9일 취재룸J는 다시 청와대 분수대를 찾았다. 그날도 이 씨는 그곳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4개월 전과 바뀐 것은 매서운 추위뿐이었다.
이날 이씨는 1인 시위를 마친 후 서울시청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임시 기억공간’ 마당에서 열린 ‘대구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 및 생명안전 국민약속식’에 이재명 대선 후보와 심상정 대선 후보가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대선) 후보들은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아들을 잃고 딸들까지 고생하고 있다”면서도 “대선 후보들과 잠깐이나마 마주할 시간이 있을지나 모르겠다”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에 도착한 이 씨는 딸들과 만나 추모식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추모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정대로 심상정 후보가 먼저 참석했다. 임시 기억공간을 둘러보고 추모식을 떠나기 전 이 씨는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심상정 후보와 짧게 대면할 수 있었다. “꼭 좀 도와달라”는 이 씨의 호소에 심상정 후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강하시라”고 위로를 건냈다.
이 씨가 눈물을 채 닦기도 전에 이재명 후보가 추모식에 도착했다. 이 씨의 두 딸 중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부대표를 맡고 있는 허경주 씨는 이날 발언대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후 정부의 대처에 대해 지적하며,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돈보다 생명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언한 뒤 자리를 떠나는 이재명 후보에게 세월호 참사 유족과 허경주 부대표가 각각 준비한 전달품을 이 후보에게 건냈다. 허경주 부대표는 “정부가 참사 대처에 실패한 후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간략한 내용을 담았다”면서 “꼭 좀 한번 읽어봐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칠순이 넘었는데 건강도 좋지 않은데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면서 “1차 수색 당시 유해를 발견했는데도 유해를 바다에 버리고 왔다. 제발 도와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 씨도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이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이재명 후보가 자리를 떠난 뒤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이 씨를 위로한 이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 정부 민원 1호였던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은 이제 다음 정부에게 넘어가게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5년을 기다려왔다. 허재용 씨는 참사가 있기 전 어머니의 무릎 수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씨 역시 수술을 미루면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나는 항상 말하지만 실종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서 “어떤 누가 유가족이 되고 싶겠나. 그렇지만 나는 유가족이라도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유해를 찾아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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