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이하 유족회)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과거사법 재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유족회에 따르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는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내각이 수립된 1960년 10월 서울 종로에서 창립됐다. 당시 유족회 회원은 114만명에 이르렀다.
유족회의 활동에 힘입어 제4대 국회는 양민학살조사특별위원회(최천 위원장)를 구성해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양민학살사건진상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확인된 사망자만 113만명으로 밝혀졌다.
1971년에 국방부가 발간한 ‘한국전쟁사4’에서도 1950년 6월25일부터 10월31일까지 남한에서만 106만명의 민간인이 학살을 당했다고 기록돼있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승만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 동안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문제는 은폐되어 왔다. 심지어 유족들조차 ‘빨갱이’로 몰리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족들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면서 노무현정권 말기에 진실과화해기본법이 제정, 제1기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명박정부는 진화위의 조사 연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유족들은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 동안 입법투쟁을 전개, 문재인정부 말기에 국민의힘과 전격적으로 합의해 진실화해기본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부산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국회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벌이며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유족회는 졸속 통과된 과거사법으로 유족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문재인정부의 과거사공약을 뒷받침 하지 못하고 개정발의된 진실화해기본법을 차일피일 미루다 문재인정부 말기에 국민의힘과 전격 합의해 법안을 통과시켰다”면서 “법안 내용에 대해 유족의 동의도 없었고 공청회 한번도 개최하지 못한 누더기법을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에 더해 어렵게 출법한 제2기진실화해위원회도 출범한지 1년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민간인학살조사결정문이 단한건도 의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진실화해위원회는 이에 대해 단한마디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이를 묵인한 문재인정부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서 진화위 위원을 뽑도록 했지만,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위원장을 제외하고 8명 위원을 전부 국회에서 뽑도록해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안건에 대해서는 통과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유족회는 위원 구성 문제를 2기 진화위 출범 당시부터 지적해왔다.
유족회는 “유족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이번 대선 전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진실화해기본법재개정안을 재발의해 현재 계류 중에 있다”며 “윤석열정부가 탄생하고 여야가 뒤바뀐 지금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법안 처리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또다시 지연 작전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국민의 생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적이다. 집단학살전쟁범죄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 적용은 국제법에 위배된다”며 “부끄러운 민간인학살문제와 인권침해를 비롯한 불행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해결책을 강구해 민족적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정부도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국민통합을 바란다면 과거사문제를 제1차 국정과제로 다루어 고통 받는 백만피학살유족들을 품어야 한다”며 “화해와 상생은 이후 저절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윤석열정부는 과거사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신속하게 통과시켜주기를 촉구하는 바”라며 “유족들과 피해연대단체들은 최후1인, 최후의 일각까지 진실규명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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