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보고서] ① 7,685명 피해자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조나리 기자 승인 2022.06.14 10:59 | 최종 수정 2022.06.21 13:22 의견 0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공론화된 지 올해로 11년이 흘렀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은 정부와 싸웠고, 가해 기업과 싸웠고, 질병과 싸워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사건이 알려지고 5년이 흐른 2016년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국회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제도 및 기구들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취재룸J’는 3편의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을 조명한다.
지난 4월 2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취재룸J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3년6개월 만에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간 피해자들이 요구해왔던 사항들이 대거 반영됐지만, 가장 중요한 피해인정 범위 확대와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화된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사참위는 조사 종료를 하루 앞둔 지난 9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사건 해결을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우선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공소시효를 현행 7년에서 대폭 연장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제품 사용 후 상당기간이 지나서 피해가 발현될 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에 대한 입증책임 역시 피해자가 아닌 기업이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제품을 제조·판매한 기업 측이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명칭 또한 ‘구제’에서 ‘지원’ 체계로 변경하도록 했다. 피해자 인정 범위 또한 현행보다 확대할 것도 요청했다. 현재까지도 정부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조속한 피해판정 실시, 기업 인권경영 제도화를 통한 책임 강화, 화학물질 관리 및 관련 정보 투명화 등도 제안했다.

이같은 권고안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단체 대부분이 요구했던 내용들이다. 실제로 사참위는 권고안 발표 전인 이달 7일 피해자 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2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와 피해자들의 사적 합의기구인 조정위 해산을 촉구하고 문재인정부의 약속불이행을 비판하고 있다. /취재룸J

대통령의 사과와 희망고문

올해 3월 31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는 7,685명이다. 이중 사망자는 1,751명이고 나머지 5,934명은 여전히 질병과 싸우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2011년 공론화됐다. 이후 5년이 지난 2016년 대대적인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같은해 10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감사가 열리기도 했다. 다음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2017년 8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깊은 사과의 밀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었다.

문재인정부는 피해인정 기준도 확대했다. 실제로 이전에 폐질환(폐섬유화)에 국한했던 피해가 대폭 확대되면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 일부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피해인정을 받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가습기살균제 노출 사실은 인정됐음에도 관련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여전하다. 피해자들은 피해인정 범위 확대가 아닌, 가습기 살균제 노출 후 질병이 발생한 피해자들을 모두 피해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피해가 아니라는 점은 기업 측이 입증해야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사안 중 하나이다. 피해자들은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안전 문제 때문에 억울하게 눈물 흘리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하지만 피해자 구제를 하겠다며 피해자들이 원하지 않는 조정위를 출범시키고 가해기업에게만 배·보상금을 추가 부담하라는 조정안을 내놓고 도망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7,685명 중 정부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은 피해자는 4,350명에 불과하다.

지난 4월 2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가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취재룸J

이에 대해 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취재룸J’와의 인터뷰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사참위가 내놓은 권고안도 세부적인 사안를 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권고안에도 가장 중요한 피해자 인정 확대와 배보상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싸움은 이제 시작됐다고 본다. 이제 공은 윤석열정부에게 돌아갔다”면서 “윤석열정부가 사참위의 권고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머지 모든 피해자들을 보듬어줄지 지켜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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