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보고서] ② 조정위의 조정안은 왜 문제인가?

조나리 기자 승인 2022.06.14 11:03 | 최종 수정 2022.06.21 13:22 의견 0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공론화된 지 올해로 11년이 흘렀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은 정부와 싸웠고, 가해기업과 싸웠고, 질병과 싸워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사건이 알려지고 5년이 흐른 2016년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국회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제도 및 기구들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취재룸J’는 3편의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을 조명한다.
지난 4월 13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가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해산을 촉구하고 있다. /취재룸J

지난해 10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출범했다. 조정위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피해구제위원회와는 구분되는 기구다. 피해자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 간의 협의를 통해 신속한 피해자 지원을 시행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출범 전부터 모든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사적 협의를 반대하는 피해자들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됐고, 결과적으로도 모든 피해자들에게 현실적인 배보상도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정위는 2020년 2월부터 출범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부위원장 겸 진상규명 소위원장이었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피해자단체 대표들을 소집해 조정위 구성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 12월 최예용 소장이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을 업무에서 제외한 사회적 참사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사참위 소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추진이 중단된 듯 했다. 그러나 다음해인 2021년 정부는 중단됐던 조정위 출범 준비를 개재하고 당시 한정애 환경부 장관으로부터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을 위원장으로 추천받아 조정위가 구성됐다.

조정위 출범은 모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가 찬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는 조정위 출범 전부터 반대 뜻을 밝혔다. 그는 “피해자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정부와 가해기업 책임을 위한 진상규명과 개정 특별법 시행령을 다시 가다듬는 것이었다”면서 “사적 합의는 결코 사회적 합의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부의 피해자단체를 중심으로 조정위가 구성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시 환경부와 조정위 구성을 주도했던 이들은 법원이 SK의 형사소송 1심에서 무죄가 나온 것을 빌미로 민사소송이나 2심 형사재판에서 승소하는 방안은 찾지도 않고 조정위 출범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처럼 궁박한 처지의 피해자들을 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안전물질 관리주체인 정부가 조정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도 의문스럽다”며 “조정위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일부 가해기업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야합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가 조정위의 해산을 촉구하며 조정위가 SK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취재룸J

피해자 분노만 낳은 조정위의 조정안

기대와 회의감 속에 출범한 조정위는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지난 3월 말 조정안을 발표했다. 조정위는 피해자 유족에 최소 2억원에서 최대 4억원을 지급하고, 최중증(초고도) 피해자에게 연령에 따라 최대 5억여원 지원, 피해 판정 대기자에게는 3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정안을 공개했다. 조정 대상은 7,027명(피해 판정 대기자 포함)이다.

그러나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와 애경산업 두 기업이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비상이 켜졌다. 나머지 7개 기업(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은 동의 의사를 보였다. 조정위는 활동기한을 연장하기로 하고, 조정안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환경보건시민센터(소장 최예용)과 일부 소비자단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들은 옥시와 애경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조정액 분담 비율 때문이다. 두 업체는 최대 9,240억원의 조정액의 6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특히 옥시는 전체의 절반인 5,000억원 가량을 내야 한다.

나머지 조정안을 수용하겠다는 기업들도 사태 해결 종국성 확보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이후 어떠한 문제나 소송 제기 불가) 일부 기업이 조정안 불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피해자 동의 등의 차후 절차도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조정안을 반대하는 곳은 옥시와 애경뿐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조정위 출범에 우려를 나타냈던 피해자 단체들도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안에 반대하는 피해자들은 “사실상 피해 판정 대기자에게 300만원을 주고 끝내겠다는 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아직도 그간 들어간 치료비와 앞으로 들어갈 치료비를 고려한다면 300만원이라는 조정안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피해 신고자들의 피해를 고려하면 가해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조정액은 조정안 내용으로는 훨씬 부족하다”면서 “특히 유해물질을 만들고 판매했던 SK는 가장 많은 배상을 해야 함에도 또 다시 옥시와 애경에게만 덮어씌우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정안에 따르면 조정위는 SK케미칼 측에 1,500만원을 부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판매사들이 원료를 SK케미칼 측으로부터 제공받아 판매한 만큼 SK 측이 가장 책임이 무겁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시민환경단체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한 배보상 금액으로 3조원 가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중 SK 측이 2조원의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선홍 글로벌에코넷 상임회장은 “이미 3,600억원 가량의 배보상을 실시한 옥시에게 추가로 5,000억원을 부담시키는 것은 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면서 “사실상 SK 측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또한 화학물질 관리를 허술하게 했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조정비율은 SK 측이 50%, 정부 30%, 이외 기업이 20%를 부담하고 치료비 또한 정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첫 단추부터 잘못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 인정 자체를 너무 제한적으로 실시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취재룸J와의 인터뷰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첫 단추부터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취재룸J

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공론화하고 피해자들을 하나로 모으려고 시도한 공은 있지만 처음부터 폐질환 중심으로 피해를 설계했다는 점이 아쉽다”면서 “또한 주로 옥시나 애경에만 초점을 맞추고 원죄 기업인 SK는 문제에서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고 사참위 활동이 진행 중일 때부터 사적 조정인 조정위를 출범시킨 것도 문제가 있었다”면서 “조정위가 활동을 연장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는 “이쯤해서 언론은 왜 옥시만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알아차려야 할 것”이라며 “이는 고도로 기획된 대사기극이자 꼼수이며 피해자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에 불과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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