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보고서] ③사건의 처음과 끝 ‘SK’

조나리 기자 승인 2022.06.14 11:05 | 최종 수정 2022.06.21 13:18 의견 0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공론화된 지 올해로 11년이 흘렀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은 정부와 싸웠고, 가해기업과 싸웠고, 질병과 싸워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사건이 알려지고 5년이 흐른 2016년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국회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제도 및 기구들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취재룸J’는 3편의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을 조명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2012년 SK케미칼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이후 2014년 2차 고발, 2015년 3차 고발, 2016년 4차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다. 2019년 가습기살균제 재수사 시작되면서 그때서야 SK케미칼에 대한 본격적인 첫 수사가 될 것으로 피해자들은 기대했다.

여러차례 피해자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SK케미칼을 비롯한 일부 기업은 검찰의 수사망에서 유유히 풀려나기도 했다. 이들 기업이 과거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행한 시험에서 유해성이 입증됐던 옥시 제품의 원료(PHMG 및 PGH)가 아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및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CMIT 및 MIT 역시 유해물질로 인정받으면서 두 성분의 유해성 논란은 가라앉았다. 실제로 정부 역시 CMIT 및 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 폐질환을 앓고 있을 시 피해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에 한때 CMIT 및 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 중 어떤 피해자는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고, 어떤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기도 했다.

CMIT 및 MIT가 주성분인 가습기 살균제는 대표적으로 애경 제품의 가습기 메이트다. 옥시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SK케미칼은 CMIT 및 MIT 공급 업체였다. 피해자들이 SK를 상대로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SK케미칼은 CMIT/MIT뿐만 아니라 PHMG/PGM 성분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과거 SK케미칼은 “성분을 공급할 당시 흡입을 경고하는 내용이 포함된 자료를 함께 제공했다”면서 “제품의 용도를 물티슈나 부직포 등의 살균제 용도로만 판매했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와 관련된 업체에 판매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감사 회의록에 따르면 피해 배·보상을 시작했던 옥시보다 SK 측의 책임이 더 무겁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산업통상자원부와 기술표준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환경부에 대한 지적도 언급됐다. 그럼에도 최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 조정안에서 나타나듯 SK케미칼 측은 여전히 옥시와 애경보다 가벼운 책임을 지고 있는 실정이다.

SK 앞에서 기자회견 하는 피해자들

올해 초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들은 사참위 활동 마무리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앞에서 철야농성, 단식농성, 기자회견 등을 이어갔다. SK를 향한 피해자들의 집회는 사적 기구인 조정위의 조정안이 발표된 지난 3월말 이후부터 더욱 증가했다.

지난 4월 13일 피해자 단체인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은 SK그룹 본사 앞 기자회견을 열고 “SK가 환영하는 조정위 조정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SK를 비롯한 가해기업의 비윤리적인 이윤추구와 정부의 독극물 관리 실패가 낳은 세계 최악의 바이오사이드 참사”라며 “피해를 축소하고 책임의 최대 주체인 SK만 환영하는, SK를 비호하기 위한 조정위의 조정안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는 SK 본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향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취재룸J

이날 박혜정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확인피해자연합 대표는 SK 본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했다. 그는 “최태원 회장님께 묻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안정성 검사 했습니까”라며 “피해자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 고통 받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소리쳤다.

김선홍 글로벌에코넷 상임회장 또한 “SK는 살균제 원료물질을 최초로 만들고 기업에 공급했다”며 “또한 안전성 검사 없이 자사 상표로 판매하기도 했다.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SK는 책임이 가장 큼에도 그간 정부는 SK에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않고 조정안을 통해 면죄를 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피해자는 취재룸J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담배도 피지 않는데 병을 얻었다. 가습기살균제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길래 사용했을 뿐”이라며 “그런데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아니면 나는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재룸J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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